국내 멀티플렉스 '적자 대처법'…영화 대신 '야구·콘서트'로

경제·산업 입력 2025-04-09 07:00:07 수정 2025-04-09 09:01:30 유여온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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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는 상수"…국내 멀티플렉스의 위기 
아이돌 콘서트·야구 생중계 등 생존전략
극장의 미래, 영화 넘어 '체험 공간'으로
멀티플렉스 3사, '사업 축소·공간 전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평일 오후 8시 마포구의 한 극장. 청소하는 직원 두어 명과 테이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년 여성이 전부였다. 심지어 이 여성 또한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이 아니라 잠시 휴게공간을 이용하러 들른 것이었다. 직원도, 관객도 사라진 영화관. 이날 마포구에 위치한 국내 대표 멀티플렉스 3사 극장 모두 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영화관 총관객 수는 1억 2313만명.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 관객 수 2억 2098만명이던 것과 비교해
56% 수준에 그치는 수치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국내 멀티플렉스 시장은 더 이상 영화관을 미래 사업으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영화관의 위기'는 굳어진 현실이라는 것이다.

◇ "적자는 상수"…국내 멀티플렉스의 위기 

이를 증명하듯 국내 멀티플렉스 3사 모두 실적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CJ CGV의 국내 영화관 사업은 2020년 팬데믹 시절부터 3년 내리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 잠깐 흑자전환(86억 원)에 성공했지만 1년 만에 다시 적자(-76억 원)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 80명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월 한때 14만 원까지 치솟았던 CGV 주가는 최근 5000원대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하락세다.

메가박스는 2020년 영업손실 655억 원을 기록한 뒤 5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 이 기간 누적 적자는 총 1754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는 13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시네마는 지난해 영업이익 3억 원을 기록했으나, 이는 국내 영화관 사업이 아닌 베트남 매출이 급증한 영향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적자는 상수"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배경으로는 팬데믹 시절 극장이 맞닥뜨렸던 이중고가 거론된다. 코로나로 인해 발길이 끊긴 영화관이 OTT의 무서운 성장과 만나 더욱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후 시장이 완화되는 국면에서도 영화관들이 특별한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해 저성장이 굳어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국내 영화·영상산업 시장 중 극장 비중은 35.9%, OTT는 61.6%로 OTT가 압도적으로 극장 점유율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극장 52.5%·OTT 42.7%였던 것이 크게 역전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내 멀티플렉스 3사는 치열한 생존 전략을 내놓고 있다. 영화 대신 아이돌 콘서트나 야구를 생중계해 극장 공간을 탈바꿈하거나 '단독 상영' 라인업을 늘리는 등 독보성을 확보하기 위해 열심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아이돌 콘서트·야구 생중계…극장가 치열한 생존전략

업계는 이제 영화가 아닌 팬덤 콘텐츠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아이돌 콘서트와 야구 경기를 실시간 상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CGV는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매주 일요일 두 경기, 정규시즌·올스타전·포스트시즌 모든 경기를 생중계로 선보인다. 야구팬들을 꾸준히 유입시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겠다는 전략이다. 그뿐만 아니라 티켓팅 경쟁이 과열된 '아이돌 콘서트'의 대안 포지셔닝도 하고 있다. 인기 보이그룹 '제로베이스원'의 첫 월드투어 실황을 개봉한 것에 이어, 이번에는 팬콘서트를 생중계로 선보인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도 마찬가지다. 메가박스는 태연의 솔로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단독 생중계했다. 돌비 시네마, 돌비 애트모스관 등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스템을 활용한 현장감으로 공연장에 가지 못하는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와 더불어 '메가 온리(MEGA ONLY)'라는 이름의 단독 라인업을 내세워 영화 마니아들도 사로잡고 있다. 일본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돌비 비전 포맷'으로 재개봉한다거나, 칸 영화제 수상작 고전영화 '자전거 탄 소년'을 재개봉하는 등 극장 주 고객인 영화 마니아층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와 걸그룹 '아이브'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지난달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오타니 쇼헤이의 경기, 'LA다저스 대 시카고 컵스' 도쿄 시리즈를 생중계했고, 다음 달에는 '아이브' 팬 콘서트를 단독 생중계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사운드 특화관 '광음시네마'와 초대형 스크린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한 '수퍼플렉스'에서 상영돼 실제 콘서트와 흡사한 열기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됐다.  

전문가들은 팬덤을 정조준한 이러한 시도가 관객의 발길을 정기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영화 마니아에 더해, 스포츠 경기와 가수 콘서트를 즐기지만 티켓킹에 실패한 팬들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 측면의 이점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아티스트 공연이나 경기 입장료보다 티켓값이 저렴해 소비자 부담이 적고, 해외 경기나 콘서트를 근거리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언제든 즐길 수 있어 장소 이동의 부담도 덜어준다는 평이다. 

뜨개상영회 현장 사진. [사진=CJ CGV ]

◇ 극장의 미래, 영화를 넘어 '체험 공간'으로

이처럼 극장은 이제 '영화관' 정체성을 넘어 '체험 공간'으로 변모하며 살길을 찾는 중이다. 국내 멀티플렉스별 상영관 활용법은 제각각이다. 메가박스는 지난달 강남점의 한 상영관을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메가 쉼표' 이벤트를 열었다. 점심시간 전후 2시간 동안 소등된 상영관, 편안한 리클라이너 좌석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단돈 1000원에 극장을 개방한 것. 신박한 콘셉트로 SNS를 타고 관심이 쏠려 인근 직장인,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도 다수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CGV는 '필름콘서트', '뜨개상영회' 등 이색 상영회를 내걸었다. '필름콘서트'는 영화의 명장면과 오케스트라 협연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형식으로 중앙 스크린에는 영화를, 좌우 벽면에는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을 상영해 관객의 관람 경험을 3면으로 확장했다. ‘뜨개상영회’에서는 상영관 내 조도를 높여 뜨개질을 영화관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두 차례 진행된 이벤트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전국 10여 개 극장으로 확장되는 성과를 올렸다.

롯데시네마는 결혼정보회사 '노블레스 수현'과 협업해 소개팅 공간으로 영화관을 활용했다. 노블레스 수현과 기획한 ‘무비플러팅’은 2030 미혼 남녀 8명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으로, 영화 관람 후 1:1 로테이션 대화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대의 영화 취향을 탐색하고 대화를 통해 보다 검증된 연애 상대를 찾는 이들의 호응을 얻으며 현재 10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들어가는 영화산업에서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제각기 생존 전략을 펼치며 분투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수익 다각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영화관의 부활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일시적인 수익을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영화 산업 자체의 지형이 변해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 멀티플렉스 3사, '사업 축소·공간 전환' 투트랙 병행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멀티플렉스 3사는 우선 극장 수를 줄이는 법을 택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CGV는 4개, 메가박스는 6개, 롯데시네마는 10개 지점을 폐점했다. 코로나가 본격화했던 2020년 총 17개 영화관이 폐점한 이래 감소세를 보이던 수치가 다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CGV는 원주점, 인천논현점, 송파점 등 총 6개 지점의 영업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3사는 폐점과 동시에 그 빈자리를 신사업으로 전환하며 수익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수의 극장을 정리한 롯데시네마는 롯데월드타워점의 일부 상영관을 '공연장'으로 대체하는 계획을 내놨다. 영화관의 스크린을 없애고 350여 석 규모의 공연장을 들여 ‘제2의 샤롯데씨어터’를 만든다는 것이다. 메가박스 또한 전국 상영관 중 네 번째로 큰 상영관이었던 킨텍스점 ‘컴포트 1관'을 아이스링크로 개조 중이다.

줄어든 관객 수만큼, 영화관들은 사업을 정리하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적자를 피해 갈 수 없게 된 국내 멀티플렉스가 향후 각자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yeo-on03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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