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일의 인생한편] 정의의 얼굴을 한 권력, 그 민낯을 향해

전국 입력 2025-05-17 00:46:37 수정 2025-05-17 00:46:37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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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국 감독의 영화 <야당>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얼마 전, 동료 영화평론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영화 <야당>(2025)에 관한 인상평을 우연히 읽었다. 그 요지는 이 작품이 익숙한 클리셰(cliché)로 이루어진 범작(凡作)이라는 것이었다. 일견 합당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영화 <야당>은 익숙한 장르적 문법을 활용해 충분한 극적 긴장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평가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흔히 평론가들이 앓는 병이 있다면, 낯설고 새로운 시도에는 후한 반면 익숙한 것들엔 인색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익숙한 장르 문법은 창의성을 잃은 도식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관객을 친숙하게 끌어들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누적 관객 300만을 돌파한 영화 <야당>은 클리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 것일까.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마약 범죄자이자 정의로운 심판자인 주인공 ‘이강수’의 입체적인 캐릭터, 동료를 배신한 검사에 대한 복수라는 명확한 동기, 그리고 현실 뉴스 화면을 연상케 하는 연출 이미지가 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린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야당>은, 감형을 목적으로 국가기관의 마약 수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조력자를 일컫는 은어다. 주인공 이강수는 서울 중앙지검 고위직을 노리는 검사 구관희의 야당으로 활동하며 여러 마약 사건을 설계해 오다, 배신을 당한다. 이후 구관희에게 복수를 꿈꾸며, 관객은 ‘이용당하고 버려진’ 이강수라는 인물에 자연스레 감정이입하게 된다.

드라마 구성의 기본은 단순하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두는 것이다. 이강수는 자신을 배신한 구관희에 맞서 복수를 계획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동료는 희생되고, 계획은 발각된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선택이다. 복수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목숨을 걸고 시도할 것인가.

이 영화는 두 겹의 서사를 가진다. 하나는 이강수의 개인적 복수극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언론·검찰이 마약 범죄를 매개로 형성하는 ‘엘리트 카르텔’의 고발이다. 마약은 검찰 권력의 획득 수단, 정치는 이를 활용해 비위를 덮는 수단, 언론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입’으로 기능한다. 결국 <야당>은 구관희 한 사람에 대한 복수를 따라가다보면, 은밀한 사회 권력의 이면을 드러내는 구조다.

이강수의 분노가 처음엔 한 인물에 향해 있었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며 그는 정치·사법·언론 권력을 쥔 카르텔 전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마약 범죄를 소재로 한 복수극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권력체계를 해부하는 사회극이 된다.

특히 흥미로운 장면은, 문제를 일으킨 유력 대선 후보의 아들을 찾으러 온 구관희가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 몇 초 안 되는 이 장면은 영화의 정치적 무의식을 정확히 관통한다.

이 대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출 절차가 실은 엘리트 카르텔의 ‘묵인’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이를 과감하게, 그러나 극 중 현실에 녹아든 방식으로 드러낸다. 다소 도발적일 수 있는 상상력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입소문을 타고 이미 많은 관객의 동의를 얻고 있는 듯하다.

▲심우일 선문대학교 K-언어문화기업학과 강사 
·선문대학교 문학이후연구소 전임연구원
·롤링스톤 코리아 영화 부문 편집위원 활동 
·전주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역임 
·TBN 전북교통방송 프로그램 ‘차차차’ 라디오 방송 활동
·웹진 <문화 다> 편집위원 역임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섹션 ‘삶을 꿈꾸다 (DERAMERS)' 책임 강연 
·계간지 <한국희곡> 편집위원 역임 
 -연극인 인터뷰 <최치언, 정범철, 김광탁 작가> 및 연극 평론

‘인생한편’은 영화평론가 심우일이 매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삶의 질문과 여운을 찾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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