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로잡은 日 문화…일본에선 韓流가 대세

경제·산업 입력 2025-05-01 08:00:07 수정 2025-05-01 08:00:07 유여온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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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취향된 J-POP·일본 애니 
정부따라 "노 재팬"·"예스재팬"
한국서 '日 패션' 진출 러시
일본 MZ 사로잡은 'K-패션' 
한일 '보더리스 소비'의 명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경제TV=유여온 인턴기자] "좋아하는 그룹에 일본 멤버들이 많아서 궁금해졌어요" 최근 다국적 아이돌에 빠진 박나현 씨(25세)는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촌에 위치한 한 어학원. 요즘 이곳에는 일본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학원에서 만난 한 강사는 "이전엔 애니덕후들이 학생의 90%였다면, 최근에는 J-POP이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멤버에 관심을 갖게 돼 오게 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엔시티 위시, 앤팀, 넥스지, 아일릿 등 일본 멤버가 중심인 인기 그룹이 등장하며, 이들이 속한 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도 늘고 있다. 업계에선 그와 더불어 최근 몇 년간 엔저의 영향으로 일본 여행이 증가한 점을 '日 문화 붐'의 이유로 꼽는다. 지난 2019년 '노 재팬' 운동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점차 반일 감정이 사그라들며 문화 소비가 본격화는 모양새다. 한일 합작 드라마·예능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는 데다, J-POP 인기도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Best of Fujii Kaze 2020-2024 ASIA TOUR" 포스터. [사진=뉴스1]

 ◇ 오타쿠 아니어도 찾는 J-POP·애니

특히, 이전에는 소위 '오타쿠' 취향으로 여겨졌던 J-POP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보편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트렌드는 지난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수십 명의 한일 가수가 참여하는 J팝 페스티벌 '원더리벳 2024'도 처음 개최됐고, '최애의 아이' 주제곡으로 유명한 '요아소비', '베텔기우스'로 화제를 모은 '유우리', 그 외에도 킹누, 챤미나, 아도 등 지금 가장 핫한 일본 아티스트들도 잇따라 내한했다.

그중에서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후지이 가제' 콘서트는 티켓 오픈 직후 전석 매진되며 대대적인 화제를 낳았다. 고척돔은 국내 최대 실내 공연장인 만큼 그간 대규모 팬덤을 지닌 아이돌들이 주로 서 왔는데, 이처럼 일본 싱어송라이터가 단숨에 매진 기록을 세운 건 이례적 흥행이라는 분석이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푸른 산호초' 신드롬도 일본 문화의 신 열풍을 증명했다. K-팝 역사상 최단기간 도쿄돔에 입성한 뉴진스. 당시 하이라이트는 단연 하니가 부른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였다. 1980년대 일본 국민 가수의 무대를 재현한 영상은 현재까지 누적 1102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폭발적 인기는 자연히 원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곡이 상징하는 '버블 시대'와 그 시절 낭만에 대한 동경의 목소리가 MZ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80년대풍 일본 음악, 영화, 패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또 한 번 뉴트로 열풍이 휘몰아쳤다.

[사진=뉴스1]

◇ 한국인 44% "일본에 대해 호감 있다"...'노 재팬'에서 '예스 재팬'으로 

전문가들은 반일 감정이 한층 누그러지고 있던 흐름과 이러한 현상이 만나,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 상승을 이끌었다는 공통된 분석을 내놨다. 
실제 일본 신문통신조사회에 따르면, 2023년 일본에 대해 ‘호감이 있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44%로, 이는 10년간 진행된 조사 이래 최고치로 알려졌다. 정서적 변화와 시대적 트렌드가 만나 문화 소비가 꽃을 피운 것이다.
44%라는 수치는 가히 놀라운 변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같은 기관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인의 79.4%가 "일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 재팬"이 "예스 재팬" 기조로 돌아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취임 이래 한일 관계 개선이 본격화되자, 양국의 국민 정서에도 변화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움직임은 여행 산업에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들어 김포-하네다 항공노선이 재개되자, 양국을 오가는 관광객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이 흐름은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추세다. 실제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를 보면, 올해 1~3월 방일 방문객 1053만7300명 중 한국인은 250만6100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2024년 방한 1위 국가는 중국(471만341명), 2위는 일본(334만697명)으로 나타났다.

◇ 불매운동 상징 '유니클로', 2024년 국내 매출 1조클럽 재입성

일본불매 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유니클로'와 '일본산 맥주' 또한 정확히 2022년을 기점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반일 감정이 거세던 2019~2021년, 유니클로는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냈다. 1조를 가뿐히 넘던 매출은 2020년 반토막이 났고, 2021년 5824억 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폐점한 매장도 60여 곳에 달한다. 그러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실리 외교'의 수혜를 입고 본격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매장만 들어가도 '매국노' 취급받던 기류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프레이즈 앞에 무색해진 덕이다. 유니클로는 2022년 7043억 원, 2023년엔 9219억 원으로 꾸준히 매출 증가세를 보이더니, 마침내 지난해 1조601억 원을 찍으며 ‘1조 클럽’ 재입성에 성공했다. 

'일본산 맥주'도 5년 만에 수입 맥주 1위 자리를 되찾았다.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언제나 공고한 1위였던 일본 맥주. 그러나 이 또한 "노 재팬"이 낳은 가치 소비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2018년 7830만 달러였던 수입액이 2019년 3975만 달러로 급감하더니 2021년엔 9위까지 순위가 밀려났다. 수입액이 반등하기 시작한 건, 역시 2022년부터다. 일본산 구매를 주저하게 만들던 분위기가 정부의 주도의 '대일 유화 노선'으로 대전환기를 맞으며 소비가 활발해졌다.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22년 1400만 달러로 전년 대비(2021년 687만 달러) 2배 이상 급증하더니, 지난해는 6744만 달러를 기록하며 당당히 1위를 탈환했다. 

빔스 팝업스토어 대표 이미지컷. [사진=롯데백화점]

◇ 한국서 日 패션 진출 러시

이러한 흐름은 음악 산업과 밀접한 '패션'의 영역으로도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일본 의류 수입액은 1억1433만달러(약 1650억원)로, 2020년(6769만달러) 대비 무려 68.9% 급증했다. 이 같은 상승세를 타고 일본의 2030 사이에서 인기를 검증받은 패션 브랜드들이 속속 국내에 상륙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대표 편집숍 '빔스(BEAMS)'다. 일본 여행 필수 코스로 유명한 빔스는 지난 4일 팝업스토어를 열며 국내 진출했다. 첫날 오전 7시부터 300여 명의 고객이 몰리며 국내 한정판 제품의 1차 물량은 완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인기 브랜드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달엔 일본 패션 브랜드를 모아 선보이는 도쿄 편집숍 '스튜디오스(Studious)'가 도산공원 인근에 국내 첫 매장을 열었다. 다음 달엔 일본 편집숍 '비숍(Bshop)'도 잇따라 오픈할 예정이다. 업계는 당분간 일본 패션에 대한 수요가 식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빈티지나 1020 타깃 저가 브랜드 등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한국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다양한 현지 브랜드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 올해 1분기 일본 거래액 2배 증가. [자료=무신사]

◇팝업스토어에 오프런...일본 MZ 사로잡은 K-패션 

한편, 일본에서는 '제4차 한류' 붐에 따라 K-패션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에 대한 특집 기사를 내고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식품, 뷰티, 패션 등 소비문화의 전 부문을 잠식한 한류 열풍을 분석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일본 패션이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선 한국 패션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 인기 브랜드에는 '마뗑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마르디 메크르디' 등이 있다. '마뗑킴'은 지난 1월 오사카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서 약 6억 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이달 시부야에 정식 개점한 1호점 매출은 나흘 만에 3억 원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지난해 5월 팝업스토어 오픈 3일 만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같은 해 6월 '마르디 메크르디'는 첫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열흘 만에 5억 원 매출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개별 브랜드뿐만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나 백화점 등 유통 채널들의 움직임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글로벌’을 통해 오사카 주요 쇼핑몰에서 총 21개 한국 브랜드가 참여하는 대형 팝업을 진행 중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앞선 2023년부터 ‘K패션82’ 플랫폼을 통해 꾸준히 일본 바이어들에게 국내 신진 브랜드를 소개해 오고 있다. 무신사는 지난해 일본 최대 온라인몰 ‘조조타운(ZOZOTOWN)'과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 브랜드들의 유통 채널 확장을 돕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확대 전략이 통한 것인지,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의 올해 1분기 일본 거래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1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회원 수와 구매 고객 수도 2배 이상 늘었다. 국내 브랜드에 대한 일본의 높아진 수요가 뚜렷한 지표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 한일 '보더리스 소비'의 명암

한국과 일본. 양국의 패션 브랜드들이 서로의 시장에서 더욱 매력을 인정받으며 입지를 넓히고 있는 현상은 새롭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소비 형태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 한편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일본풍이, 일본에서는 한국식이 유행의 표준이 되어 뒤섞여버리면, 각국이 가진 고유한 특색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서로의 문화를 동경하고 적극 향유하는 한일 간 국경 없는 소비 형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eo-on03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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