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4人4色 | 전승훈] 정치가 나아갈 때, 문화는 멈춰야 하는가

전국 입력 2025-05-03 10:00:05 수정 2025-05-03 10:00:05 이경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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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지난 4월 8일,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오는 6월 3일로 확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으로 촉발된 조기 대선은 헌정사상 초유의 계엄 사태와 더불어, 국가적 혼란 속에 치러지는 유례없는 선거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무너진 헌법 질서를 되살리고 민주주의를 복원할 역사적 전환점이다. 정당이나 진영의 승패를 넘어, 헌정 질서 회복과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물음에 시민이 어떻게 응답할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필자는 믿는다.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하지만 정치가 나아가는 동안,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이다. 공직선거법 제86조(공무원의 선거 영향 행위 금지)와 제112조(기부행위의 정의 등)에 따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계획된 문화행사를 중단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특히 보조금을 지원받는 문화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원금이 자칫 선거구민에 대한 ‘기부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총괄기획을 맡았던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 지원사업' 익산 프로젝트도 결국 선거 이후로 모든 일정이 연기됐다. 누구나 익숙하다고 말하지만, 예술가들에게만큼은 익숙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예술인의 평균 연소득은 1,055만 원. 이는 국민 평균 소득(2,554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북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북 예술인의 평균 연소득은 1,166만 원이지만, 이 중 예술활동 소득은 464만 원(39.8%)에 불과했고, ‘소득 없음’ 응답도 10%를 넘었다. 예술인의 삶은 현실적으로 위태롭고 절박하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상황에서, 행사의 연기나 중단은 생계를 흔드는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예술인들이 얼마나 ‘보조금’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창작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각종 보조금 사업과 행사 출연료는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다. 그러나 여전히 보조금은 ‘시혜’로 여겨지고, 예술인들도 그 시선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필자는 그간 보조금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그 과정에서 보조금은 ‘시혜’가 아닌 ‘경쟁’을 통한 선정임을 직접 목격해왔다. 이 제도는 ‘특정 단체에 대한 후원’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문화예술이 정치 앞에 매번 멈춰서는 대상이 아닌,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등한 사회의 한 축으로 설 수 있다.

정치가 사회를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라면, 문화는 그 사회가 숨을 쉬고 감정을 나누는 힘이다. 이 두 축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조기 대선이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문화예술은 잠시 멈췄지만, 그 멈춤이 끝난 뒤 다시 숨을 쉬고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치가 한 걸음 나아가는 이 순간, 문화도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더 이상 예술이 위태롭지 않은 사회, 정치와 문화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을 간절히 바란다.

▲ 전승훈 원광대학교 글로벌 K-컬처 사업단 기획행정실장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익산시문화도시 지원센터 사무국장
·원광대학교 HK+지역인문학센터 행정실장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심의위원
·익산시민역사기록관 운영위원
·부안군문화재단 전문위원

'문화 4人4色'은 전북 문화·예술 분야의 네 전문가가 도민에게 문화의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 기고, 생생한 리뷰, 기획기사 등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본 기고는 본지의 취재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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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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